2015년 6월 22일 월요일

영화이야기





영화화한 연평해전은 제 1 의 연평해전이 아닌

제 2의 연평해전 입니다.

그렇다면 제 1의 연평해전은 무엇일까?

1999년 6월 7일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 3척이

어선 보호 미명하에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였다.

1999년 6월 8일에도 북한은 경비정 4척과 어선 10척을

북방한계선 남쪽 9km까지 침범시켰다.

이에 대한민국 해군은 고속정을 접근시켰고

퇴각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경비정 3척을 추가 투입해 전적인 행동을

계속하였다. 1999년  6월 9일 북학 고속정이 대한민국

해군이 고속정을 충동하여 손상을 입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9년 6월 15일 오전에 북한경비정 7척이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에 접근하여 충돌공격을

가하였고 대한민국 해군도 맞대응 하였다.

양측간에 혼전이 벌어지던 중 북한 함정이 먼저

사격을 가하였고 대한민국 해군은 자위권차원에서

즉각 대응사격을 가하였다. 쌍방간의 교전은

14분간 진행되었다.

그후

이에 따라 북한은 사망이 30명,부상 70명을 미국 CNN에서

보도 했다. 우리나라 해군은 경상 9명으로 함정도 모두

복구를 하였다.

그리고 2002년 6월 29일 연평해전과 같은 장소에서

3년만에 다시 발생하였다. 배경은 연평해전의 패배를

되갚기 위해 계획적으로 준비된 도발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지역적인 문제도 있다.

남,북학인 주장하고 있는 NLL이 다르고 현재의 NLL이

북학지역을 육안으로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매우신경쓰이는 지역이다.

제 2의 연평해전은 대한민국 해군이 피해를 입었다.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로 달라진 것은 교전수칙이 적극적인 대응으로

바뀌었다. 경고방송 -> 경고사격 -> 격파사격이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교전수칙이 5단계였다.

영화는 6명의 전사자 중 3명을 묘사하고 있다.

윤영하대위 정장, 한상국 하사 조타장, 박동혁 상병 의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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